한국 천주교의 시작은 어땠을까???
'말씀의 길'을 따르다 보면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길은 한국 최초의 희생자로 기록된 김범우의 집터와
천주교 세례식이 처음으로 거행된 이백의 집터를 둘러보며
시작하는 길입니다.
'말씀의 길'은 한국 천주교회가 이처럼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자발적으로 복음 말씀을 받아들인
평신도 신앙 공동체라는 의미를 되새기며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한 최초의 외국인 사제인 '주문모 신부'가 성수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석정보름우물과 그의 활동지로 알려진 계동 일대의
가회동성당을 둘러보며 타지에서 순교를 택한 그의 희생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순례자 여권까지 구입을 했으니
몇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까운 서울 순례길 부터 출발~!!!
먼저 서울 순례길을 돌려면
서울 순례길 앱을 깔아서 보면서 순례하기를 추천
서울 둘레길은 이정표등이 잘되어 있어
따라 가기만 하면되지만
우리의 순례길은 따로 표시가 없다.
일단 다운을 받고
*서울 순례길 앱 사용법
서울 순례길 앱 소개
서울 성지순례에 도움이 되는 서울 순례길 앱을 소개합니다. 앱이 없다면 계속해서 지도를 검색해야 하지만 서울 순례길 앱에서는 지도는 물론 성지소개, 주변관광지 등의 정보를 알 수 있고 온
sign119.tistory.com
앱에서 '말씀의 길' 지도보기를 하면
위처럼 GPS로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우측 상단 '표적'을 누르면 현재위치 파악 가능)
참고로 순례길 앱이랑 따로 사용중인 걷기 앱을
같이 사용하다보면 밧데리 음서지는게 눈으로 보인다.
(보조밧데리 가지고 댕기는거 추천)
그럼 서울 순례길 1코스 '말씀의 길' 시~작
1코스 '말씀의 길' (명동성당 ~ 가회동 성당)
총 거리 : 8.7km
시간 : 3시간 40분
앱이 없으면 아래 지도를 보고
카카오맵
당신을 좋은 곳으로 안내 할 지도
map.kakao.com
먼저 1코스의 시작인 명동성당에서 출발한다.
서울 순례길 앱을 켜고 이동을 하면
성지 근처에서 위처럼 자동으로 성지방문 메세지가 뜬다.
(혹시 자동으로 뜨지 않으면 1코스 성지 리스트에서 해당
성지를 클릭하면 위처럼 방문확인 메세지가 뜬다)
오프라인으로는 여권도장을 찍고
온라인으로는 이렇게 나의 순례길을 확인할 수 있으니
느무느무 조으네~
서울 순례길 1코스 첫번째 - 명동대성당
1코스 첫번째 명동성당
명동성당 스탬프는 성당 사무실 건물안 입구에 있다.
(월요일은 사무실 휴무관계로 성당 입구 계단에 있는 관리실에서 쾅)
명동성당에서 스탬프를 찍었다고
바로 출발을 하면 다시 되돌아 와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꼭 성당 우측에 있는 천주교 역사관에 가서 아래 성지스탬프를 찍어야한다.
(스탬프가 목적이면 월요일은 피하자 ^.^
월요일은 대부분 휴무)
역사관에서 봉사자분께 한국 천주교 설명도 듣고
스탬프도 찍고
미리내등 큰 성지는 관리자가 있어 스탬프등이 관리가 잘되지만
길거리에 있는 성지(터)는 관리가 안되어
이렇게 한곳에서 스탬프를 찍는 곳이 있다.
-한국천주교회 창립터(이벽의 집터)
-장악원 터(김범우의 집터)
-한국천주교회 순교자 124위 시복터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터
서울 순례길 1코스 두번째 - 김범우의 집 터(장악원 터)
이곳은 한국 천주교회 창설 직후인 1784년 말
신앙 집회가 열렸던 곳으로
김범우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증거자로 기록된 인물이다.
집주인이었던 김범우는 신자들에게 '천주실의', '칠극' 과
같은 교회 서적을 보관하고 있다가 빌려주면서
교리를 전파하였다.
당시 이곳에서 모임을 가졌던 신앙공동체를 '명례방 공동체'라고
하는데, 구성원은 이승훈과 이벽을 비롯하여 권일신, 정약용,
최인길, 지황 등이었다.
명례방 공동체는 1785년 봄 형조의 관리들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는데, 이 사건을 '명례방 사건' 또는 '을사 추조 적발사건'
이라 한다.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김범우는
가혹한 형벌을 받고 충북 단양으로 유배된 후
고문의 후유증으로 1786년 선종하였다.
서울 순례길 1코스 세번째 - 한국 천주교회 창립터
이곳은 이벽(1754~1785)이 살던 집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곳이다.
이벽은 선교사가 없는 조선에서 독학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조직을 키워나간 매우 이례적인 인물이다.
이승훈이 중국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오자
정조 때인 1784년 자신의 집에서 권일신, 정약용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이는 한국에서 거행된 최초의 세례식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로
간주된다.
여기는 표지석과 설명 입간판(?)이 따로 떨어져 있다.
입간판은 다리위, 표지석은 길건너 길가에
잘 찾아야 한다.
서울 순례길 1코스 네번째 - 좌포도청터
단성사 입구에 있는 좌포도청터
오랜만에 그 유명한 단성사도 방문
종로성당 가는길에 종묘도 보이고
순례길을 걷다보면 가볼만 한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아마 다 둘러본다면 하루로는 부족할듯
다음을 기약하며 성지를 제외한 모든곳은 패스~
서울 순례길 1코스 다섯번째 - 종로성지성당
조선시대의 좌,우포도청은 서울에 있는 중요한 순교 장소일 뿐 아니라
한국 천주교회 최대의 신앙 증거터이다.
좌,우포도청 순례지를 관할 구역안에 두고 있는 종로성당은
2013년 2월 당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으로부터
포도청 순례지 성당으로 지정 받아, 포도청 순교 성인들을
본당 수호성인으로 승인받았다.
이에 2013년 9월 성당 내에 순교자 현양관을 마련하여
포도청(옥터) 순교자들의 신앙을 소개하고 지속적으로 미사를
봉헌하며, 포도청 순례지를 잇는 순례길을 안내함으로써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적 사건과 의미를 일깨우고 있다.
명동성당 만큼 오래 둘러본 종로성당
일단 여기에서는 스탬프가 7개다.
-경기감영터
-우포도청터
-의금부터
-전옥서터
-종로성당
-좌포도청터
-형조터
지하에 있는 순교자 현양관
조선시대 포도청과 형벌(무시무시하다)
입구에 순교자분들과 그분들께 기도 드릴 수 있는 공간
나도 가족들의 건강과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 드리고 o( ̄┰ ̄*)ゞ
옥에 갇힌 순교자분들
형벌에 사용 되었던 도구들
김대건 신부 옥중서한 중 회유문
저의 벗인 교우들이여!
하느님의 섭리를 되새겨보고 또 되새겨 보십시오.
하느님께서 태초에 천지만물을 각각 짝으로 지어내시고,
그중에서 우리 사람만은 당신 모습으로 지어 세상에 내셨으니
이러한 창조주와 그분의 뜻을 되새겨 보십시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슬프고도 일이 많습니다.
이와같이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태어나 우리를 지어내신
창조주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 태어난 보람이 있겠습니까?
(중략)
부디 교우들끼리 우애를 잊지 말고 도우며,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환난을 물리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혹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부디 삼가고 아주 조심하여
주님께 영광을 드리십시오, 천만 번 조심하십시오.
여기 옥중에 있는 사람 스무 명은 아직 주님의 은혜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설령 죽은 뒤에라도 여러분들이 부디 그 사람들의 가족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말씀드릴 것은 많지만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그치렵니다.
제 입을 당신들의 입에 대고 사랑의 친구를 보냅니다.
서울 순례길 1코스 여섯번째 - 광희문 성지
광희문은 1396년 한양 도성을 창건할 때 세운 서울의
4대문 사이에 위치한 4소문 중 동남 방향에 있는 성문으로
장충단에서 한강 사이의 남소문이 없어진 뒤 북쪽의 수구문을
일컬어 광희문이라고 불렀다.
또한 서소문과 함께 한양 도성 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도성 밖으로 내보내는 문으로 사용되어
시구문으로도 불렀다.
광희문 바로 앞 순교자 현양관
순례자 여권을 살 수도 있는 곳이다.
입구 왼쪽편에 있는 우체통이 스탬프이다.
여기서도 스탬프 도장을 찍고
광희문
서울 순례길 1코스 일곱번째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1909년 서울 백동(현 혜화동)에 자리잡은 성 베네딕도회는
1927년 11월 원산 인근의 덕원으로 수도원을 옮겼다.
서울대교구장인 뮈텔 주교는 백동수도원 부지를 매입하였고
수도원을 매입한 서울대교구는 1927년 부지 내에 있는
숭공학교 목공소를 고쳐 현재의 혜화동 성당을 지었다.
(중략)
대신학교는 1945년 5월 혜화동으로 이전하여 1947년
성신대학으로, 1959년에 다시 가톨릭대학으로 교명을 바꾸었다.
1855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베론 성요셉 신학교를
모태로 발전해온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는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셔져,
오늘도 그를 본받아 이 땅의 참된 목자가 되려는
신학생들의 삶에 함께하고 있다.
이곳의 스탬프는 교문에 있는
수위(?) 아저씨께서 쾅
성신교정 바로 옆 혜화동 성당
가끔 사촌땜시 다녔던 곳
석정보름우물과 가회동성당을 가기위해
지나가야하는 북촌마을
여긴 볼거리 먹거리등이 많아
다른날 따로 방문해야 할곳으로 찜뽕
서울 순례길 1코스 여덟번째 - 석정보름우물
서울에 상수도 시설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20세기 초까지 우물은 주된 음수 및 생활용수 공급원이었다.
북촌 주민들의 중요한 음수원이던 석정보름우물은
15일 동안은 맑고, 15일 동안은 흐려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1794년 중국에서 압록강을 건너온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주문모 신부가 1801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전까지
계동 최인길의 집에 숨어 지내면서 조선땅에서 첫 미사를
봉헌할 때, 이 우물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1845년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도
이 지역에서의 짧은 사목기간 동안 이 물을 성수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주교 박해 당시 많은 순교자가 발생하자,
갑자기 물맛이 써져서 한동안 사용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북촌마을을 구경하다보면 여기를 그냥 지나치게 된다.
오르막 구간이라 다시 되돌아 오지 않을려면
오른쪽을 잘 살피면서 구경하자
북촌한옥마을
하늘도 맑고 집들도 마이 이뿌다
서울 순례길 1코스 아홉번째 - 가회동 성당
북촌 한옥마을이 있는 계동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외국인 신부인
주문모 신부가 조선 땅에서의 첫 미사를 집전한 곳이자,
마지막 조선 왕실이 세례를 받은 역사적인 장소이다.
1795년 4월 5일 부활대축일에 주문모 신부는 계동 최인길의 집에서
첫 미사를 열었다.
주 신부의 존재가 알려져 체포령이 내려지자 주 신부는
강완숙의 집으로 피신하였으나 최인길, 윤유일, 지황은
포도청에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이후 주 신부는 강완숙의 집에 숨어 지내면서 활동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때 강완숙과 함께 순교하였다.
2014년 주문모신부, 최인길, 윤유일, 지황, 강완숙 등 5명은
모두 복자로 시복되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100여년 동안 천주교를 탄압했던 조선 왕실의
마지막 왕족인 의친왕 이강(흥선대원권의 손자이자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
이 성당의 관할 구역인 안국동 별궁에서 본당 박병윤 신부로부터
'비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같은해 8월 14일에는 의친왕비
김숙도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점이다.
1949년 한국 천주교 초기 신앙의 중심지였던 이 지역에
가회동 성당이 설립되었고, 이후 역사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사랑, 대청마루를 가진 한옥과 성당이 들어선 양옥이 어우러진
구조로 2014년 새롭게 건립되었다.
성당 1층에는 한국 천주교회와 가회동 성당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처음보고 성당이야??? 집이야???
라고 생각했던
일단 성당 입구에서 스탬프 쾅
토요일이라 성당에서 결혼식이
부럽
전국 많은 성당을 가봤지만
몇손가락 안에 드는 아담하고 이쁜 성당
서울 순례길은 힘든 산길이 아닌 도심을 걸으면서
갈 수 있어서 편하기도 하고 걷는동안
서울 시내에 있는 많은 역사적인 문화재, 관광지를
둘러 볼 수 있기에 차보다는 걸어서 가기를 추천한다.
서울에서 20년을 넘게 생활하면서
이번 코스만해도 처음가본곳이 대부분이다.
그럼 또 어떤 새로운곳이 있는지
2코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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